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원나라의 일본원정 (문단 편집) === 하카타 만 공략 === || [[파일:external/cdn-5859be45f911ca35ec95022d.closte.com/9f1140fadb1fc2cdc9f9b6d0ffa397501.jpg|width=350&align=right]] ||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b06752f9c3f44574b546f4bb75d25045.jpg|width=350]] || 음력 7월 27일, 히라도에서 합류한 동로군과 강남군은 다카시마에 상륙하여 진영을 축조하는 한편, 다시 하카타 만 공략을 준비했다. 막부군은 이 소식을 듣고 반격을 준비했으나 4천여 척의 대함대의 위용에 눌려 전면전을 벌일 엄두를 내지도 못하고 소선으로 기습전을 벌였다.[* 이 당시 막부군이 동원한 배들은 농사를 짓는데 필요한 물을 퍼나르던 아주 작은 크기였다(...)] 당시 기습전에 참가한 이요국의 고케닌 고노 미치아리(河野通有)는 3척의 배들에 자신의 일가를 포함한 별동대를 분승시켜 연합군 군함에 접근해 분전을 벌이다[* 참고로 배가 소선이였던 탓에 보다 체급이 컸던 고려 함선인 '천료주'에 접현이 힘들어 배의 돛을 부러뜨리고(...) 올라탔다고 한다.] 연합군의 석궁에 맞아 부상을 입게 되지만, 배를 접현시키는데 성공하여 연합군 배에 횃불을 던지고 적병을 베며 연합군 지휘관 한명을 납치하고 귀환하는 등 활약했다 심지어 무사들이 직접 수영하여 연합군의 선박 하나에 침투해 다수의 병사들을 베고 돌아오는 기막힌 상황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몇 차례 감행된 소선 기습 당시 일본군은 연합군의 배에 설치된 투석기에 의해 많은 피해를 입었다. 동로군과 강남군이 합류한 비슷한 시기 일본 본토에서는 호죠 토키무네의 직명을 받은 우츠노미야 사다츠나(宇都宮貞綱)가 산요 산이 지방 등지의 고케닌들로 부터 소집한 6만의 대군을 이끌고 기타큐슈를 향해 출전했다.[* 이때 총대장 우츠노미야 사다츠나의 나이는 무려 '''16세'''였다. 물론 당시 15세 정도면 성인 취급이었기에 가능했으며, 당시 우츠노미야가는 관동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고, 문무가 뛰어났기에 호죠가 신뢰하고 맡긴 것으로 보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